영은재

영은재

언덕 경사면에 지어져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주택, 영은재. 건축가의 창의성과 건축주의 삶이 자연스레 투영된 이 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영은재 건축 개요
대지면적
245.1m²
건축면적 334.49m²
건축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외부마감 게이비언, 테라코타
내부마감 페인트, 모카오크 원목 마루

01 거대한 바위 틈에 아늑하고 평온한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를 형상화한 영은재. 자갈로 쌓은 게이비언(Gabion)을 중심으로 부드러운 화이트 외장재로 감싸 안은 듯 설계했다.
02 영은재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건물이 폐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개방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전혀 다른 반전 매력에 시선을 빼앗긴다.
03 마당은 안주인 조미은 씨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다. 조팝나무, 계수나무, 단풍나무, 앵두나무, 노각나무, 회잎나무 등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영은재(永銀齋)의 시작은 이렇다. 조미은 씨 부부는 자신들의 취향과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주택을 짓고 싶었고, 건축상을 받은 유명 주택과 건축가들을 찾아 다니던 중 마음에 드는 몇몇 집의 건축가가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바로 디아키즈 명재용 대표였던 것. 그와 만남을 가진 뒤 부부는 건축 매니지먼트인 디아키즈와의 작업이라면 마음에 드는 집을 지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고, 그와 함께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집을 지을 때 건축가의 창작성과 건축주의 이상이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건축가와 건축주가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명재용 대표는 이 과정을 통해 건축주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해 나갔고, 건축주 역시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집에 대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냈다. 명재용 대표는 언덕 경사면의 대지를 보고 그곳에 세울 집의 콘셉트에 대해 건축주 부부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언덕 위, 태초부터 존재했던 거대한 바위가 있습니다. 거칠고 차가운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동물들이 동면할 수 있는 아늑하고 따뜻한 안식처 같은 동굴이 이어져 있죠.” 반전의 매력이 있는 집. 건축주는 집에 대한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고, 그렇게 영은재의 초안이 잡혔다.

1층 다이닝 룸부터 3층 천창까지 이어진 이 공간은 건물의 중앙에 속한다. 천창을 통해 하루 종일 햇살이 들어오기 때문에 거실에는 메인 조명이 따로 필요 없다.

1층 코어 역할을 하는 화장실. 경사면에 지은 까닭에 2단으로 나뉜 거실은 입체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레벨 차이로 완성된 독특한 구조
대지는 건축의 형태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언덕 위 경사진 대지에 어떤 집을 지어야 할지 고민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이 경사면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1층이 언덕 아래 쪽에서는 2층처럼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대지의 고저 차이 때문이다. 이러한 대지의 경사면은 영은재의 독특한 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한몫했다. 일반적으로 건축에서 공동 시설에 해당하는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 계단 등을 코어(Core)라고 부른다. 코어는 건물의 상하를 안전하고 기능적으로 연결하는 핵심 공간인데, 디아키즈 명재용 대표는 1층 중앙에 화장실을 코어로 두고, 그 주변에 거실과 다이닝 룸, 주방을 빙 둘러 배치했다. 경사면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거실에도 레벨 차이를 두어 계단 아래는 서재로, 계단 위쪽은 메인 거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독특한 점은 코어를 중심으로 한 이 모든 공간이 막힘 없이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보는 각도에 따라 때론 연속적인 공간으로, 때론 불연속적인 공간으로 비친다. 이러한 독특한 구조가 영은재를 ‘사는 재미가 있는’ 입체적인 주택으로 만들어주었다.

서재로 사용하는 작은 거실은 다시 주방과 이어진다. 두 공간의 연결 지점에는 유리로 펜스를 설치해 시각적인 연속성을 확보했다. 머스터드 컬러의 플로어 조명은 웰즈에서 구입했다.

건축주가 바라던 그 집, 영은재
조미은 씨는 이번에 집을 지으면서 건축주가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막연하게 머릿속에 그려놓은 집이 아니라 정말 내가 살고 싶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집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해요.”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건축주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건축가가 제안하는 구조와 설계, 외장재부터 마감재까지, 모든 결정은 건축주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선택의 순간,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없다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고, 결국은 사는 것이 불편한 집이 될 수도 있다. ‘살고 싶은 집’이란 다시 말해, 건축주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집이다. 조은미 씨 부부는 자신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명확히 파악한 건축주였다. 그들은 채우기보다 비웠을 때 아름답고,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햇살을 가득 품되 프라이빗한 생활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살기 편한 집을 원했다. 그리고 건축가가 수없이 내놓은 제안 중 그들이 원하는 집의 모습대로 선택해 나갔다. 완성된 집은 깔끔하고 밝은 느낌이 들도록 화이트 벽으로 마감하고, 동선을 고려해 남쪽에 계단을 배치했다. 공간마다 창의 높이와 크기를 달리해 채광은 끌어들이되 외부에서는 안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설계했다. 건축주가 바라던 바로 그 집, 영은재가 완성된 것이다.
설계 및 시공 디아키즈(02-511-8406, www.dearchiis.co.kr)

01 영은재는 사선을 모티프로 지은 집이기도 하다. 건축법에 따라 일조권 사선 높이 제한을 그대로 적용했을뿐더러, 경사면의 사선을 건축적인 요소로 활용한 것. 이 모티프는 공간을 유기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02 영은재에서 거실 못지않게 신경 쓴 공간이 바로 다이닝 룸이다. 다이닝 룸의 천장은 3층까지 이어지는데, 이를 통해 공간감을 확보한 것은 물론 천창을 통해 하루 종일 자연광을 누릴 수 있다.

03 동선을 고려해 1층과 지하 현관이 이어지도록 남쪽에 배치한 계단. 심플한 라인 구조를 선택해 사선 모티프와 연결된다.
04 2층 부부의 침실. 침대 옆으로 경사진 벽면을 따라 세로로 길게 창을 내었다.
05 옥상으로 이어진 계단 복도. ‘ㄱ’자로 낸 창을 통해 영은재의 뒷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창의 위치에 따라 색다른 모습의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채광은 들이되 외부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 프라이빗하게 생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