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넬

현실과 상상이 조응하는 열린 공간

빛의 기울기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조차 인테리어가 된다. 누우면 한 뼘 하늘이 열리고 정형화되지 않은 유리창으로 날마다 다른 풍경이 걸린다. 몸을 열면 다양한 컬러를 품은 팔레트처럼 각자의 개성을 오롯이 담되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는 집. 상상이 현실이 된 그곳에서.

오후의 빛이 한껏 쏟아져 들어와 부드러운 공간을 연출하는 리빙 룸. 몽티니의 모듈 소파와 부페장으로 꾸몄는데, 소파는 다리에 바퀴가 있어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이상한 나라에 갔던 앨리스는 결국 어떻게 되었더라?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나섰다가 모자 장수를 만나고 공작 부인과 체셔 고양이, 카드 병정까지 마주친 후 아마도 긴 여행(꿈) 끝에 집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오후, 앨리스의 기분을 조금쯤 이해할 것 같았다. 머무는 이의 등을 쓰다듬는 집이란 그런 존재다. 현실인 듯 상상 같은, 봄날의 꿈같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은 IT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 인근에 자리했다. 남북으로 긴 형태의 대지로, 서쪽으로는 주택단지가 이어져 있고 동쪽으로는 차량 통행이 잦은 인접도로가 면해 있다. 그 너머로 멀리 나란히 겹쳐 선 빌딩숲이 보이는데, 하나의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독창적 외관이 유독 눈에 띈다. 심지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상자 속 상자처럼 또 하나의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2층에서는 뷰러형 데스크가 가장 먼저 반긴다. 서서 간단한 메모나 랩톱을 이용할 수 있어, 복도 공간에 배치했다.

3대가 모여 사는 모던 클래식 하우스
“가족이 모두 모여 사는 꿈을 꽤 오랫동안 꾸었어요. 대지를 선정하고 마음이 맞는 파트너를 만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과가 상상했던 그대로라 만족스러워요. 아직은 겨울 냄새가 어렴풋하게 남아 있지만 초록이 완연하면 주변이 훨씬 근사해지리라 기대합니다.”
모던 클래식 가구 브랜드 ‘파넬’을 이끄는 최정원 이사의 패밀리 하우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총 2층 구조로 1층은 부모님, 2층은 동생네와 자신의 식구, 이렇게 3대가 함께하며 지하는 모두의 엔터테인먼트 룸으로 꾸몄다. 지난해 1월부터 본격적인 설계와 인테리어 디자인이 이루어졌는데 워낙 그레이 톤을 좋아해서 채도 차이로 변화를 주고, 간결한 몰딩으로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단 각자의 공간에는 포인트 벽지며 가구로 자신만의 취향을 반영했다.
블랙과 화이트, 그레이 톤을 바탕으로 한 공간은 차갑기보다 따듯하고 도시적이면서도 우아하고 고풍스럽다. 사실 이 부분은 최 이사의 고민이 가장 많이 담긴 대목으로, 설계와 시공을 맡은 디아키즈의 명재용 대표로서는 제일 풀기 어려운 숙제이기도 했다. 원래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그는 공간에 놓을 가구를 염두에 두면서 공간 규모와 구조 하나하나에 신경 썼다. 골격만 살려 개방감이 돋보이는 스틸형 계단이며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원기둥, 높은 천고와 과하지 않은 몰딩 등이 이러한 고민의 결과다. 비어 있음으로 해서 채워지는 균형감은 그렇게 좋은 건축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01 리빙 룸에서 바라본 다이닝 룸의 모습. 테이블을 약간 비틀어 배치해 보다 자연스러운 공간을 완성했다.
02 1층 키친 안쪽의 코지 코너. 부피가 크지 않은 7단 서랍장에는 간단한 제품을 분류하여 수납할 수 있다.
03 파넬이 프랑스, 덴마크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는 테이블웨어. 우아한 실루엣의 접시와 은으로 만든 커틀러리, 그레이 톤의 러너까지 공간 속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빚어낸다.

04 다이아몬드형 모노크롬 타일 바닥에 같은 패턴의 가구를 배치해 과감하면서도 유니크한 공간을 연출했다.
05 파넬을 이끌고 있는 최영범과 조민임 부부.
06 방과 방 사이의 코너에 자리한 세면대. 이곳에서는 작은 자투리 공간 하나도 허투루 넘기는 일이 없다.

프랑스 영화 속 한 장면을 닮은 최정아 실장 부부의 베드 룸. 규칙적인 벽지로 차분함을 연출하되 장식성이 돋보이는 몽티니의 프렌치 라운드 침대를 들여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한 장면을 완성했다.

단순한 벽에 불과한데 하나의 의자 혹은 오브제를 놓자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나브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경. 이곳이라서 가능한 무드다.
“설계를 하면서 명재용 대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누구와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궁극적으로 어떤 풍경을 꿈꾸는지. 동선이나 내장재 등 실용적인 부분도 중요했지만 감성적인 측면의 커뮤니케이션이 꾸준히 이루어졌죠.”
집의 전체적인 인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의 기울기와 나무의 방향, 바람의 넘나듦까지 고려한 덕분에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단 하나의 공간이 빚어진 셈이다. 창문 하나조차 같은 모양이 없을뿐더러 부부의 방과 아이 방 사이에는 꼭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열림과 닫힘이 자연스러운 트랜스폼 공간을 구성했다.
그렇다고 실용성을 놓치면 서운하다. 1층에는 최영범·조민임 대표 부부의 방을 비롯해 리빙 룸과 다이닝 룸을 주축으로 생활 공간을 꾸몄고, 2층은 두 자매의 가족이 온전히 쉴 수 있는 베드 룸을 복도 양 끝에 배치했다. 계단을 오르면 그리 길지 않은 복도가 이어지는데 가운데 코지 코너는 화이트 벽돌로 마감하고 타원형 거울을 달아 심플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디서건 가구의 방향이나 문을 활용해 데드 스페이스 없이 기능에 충실한 꼼꼼한 공간 활용도 눈에 띈다.

01 1층에 자리한 최영범과 조민임 부부의 방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직사각형의 하늘이 자연스럽게 걸리는 창. 직접 제작하는 헤드보드와 리넨 침구류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02 높은 천고로 넓은 공간을 확보한 최정원 이사 부부의 베드 룸. 2인 소파와 짙은 그린 컬러가 돋보이는 원형 테이블 모두 몽티니 제품.
03 작은 공간의 게스트 화장실을 클래식한 벽지와 파넬 특유의 고풍스러운 프레임이 돋보이는 거울로 장식했다.
04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듯 공간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프렌치 스타일의 2단 브라스 서랍장.

감각의 유전
지하 공간은 더욱 놀랍다. 모든 구성원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엔터테인먼트 룸으로 꾸몄는데 손님들이 찾아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게스트 룸의 역할도 겸한다. 사운드바를 놓아 만든 홈 시어터 옆에는 이 공간을 위해 유럽에서 직접 공수한 키가 제법 큰 책장을 놓았고 고풍스러운 벽난로도 존재감을 더한다. 무겁지 않게 연출한 앤티크 인테리어 덕에 계단 하나를 내려왔을 뿐인데 마치 다른 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듯한 착각마저 인다.

01 파벽돌로 마감해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 지하. 테이블과 의자를 겸해 쓸 수 있는 스페인 디자이너의 원형 오토만은 천연 소재와 천연 염색을 활용해 자연스러운 컬러감이 포인트다.
02 , 03 리넨 암체어와 3개의 다리로 제작된 클래식하지만 모던한 체어로 연출한 공간.

지하에는 빈티지 에폭시를 바닥재로 활용해 1, 2층과는 상반되는 멋을 더했다. 침대에서 바라본 계단 사이로는 햇살이 자연스레 비집고 들어오고 통유리 너머로 야외가 담겨 지하에서 느낄 수 있는 답답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이러한 감성은 배운다고 해서 쉽사리 체득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간 파넬은 무겁고 중후하게만 느껴지는 기존 클래식 가구와 달리 현대적 느낌을 가미한 새로운 형태의 가구를 선보여왔다. 고전적인 우아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나친 장식이나 컬러를 배제해 말 그대로 네오 클래식을 전개한 것. 독자적인 제품은 물론 엘레강스한 ‘몽티니’를 독점 수입해 소비자와의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패브릭과 조명, 테이블웨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인과 물성을 활용해 토털 홈 인테리어를 제안해온 파넬의 정체성이 곳곳에 숨어 있으니 당연한 결과라 여겨지면서도 안경 하나 허투루 내려놓지 않는 최영범 대표를 보고 있자니 감각은 역시 유전되는 것은 아닐까 어렴풋하게나마 짐작된다.

그녀가 말하는 미래 지향
아이가 일어나서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무는 장소는 어디일까? 가장 햇빛이 잘 들어 광합성을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은?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고 눈이 오면 쌓인 눈을 보며 아이가 잠들 수 있다면. 무수한 물음과 상상, 그리고 바람이 주택 곳곳에 숨어 있다. 천장에 작은 틈을 내 벽지와 이어지는 한 뼘 하늘을 만들어준 것도, 베드와 눈높이를 맞춰 창을 낸 것도 그래서다.
거주자의 상상을 현실로 만든 건축가, 그 상자를 멋진 감각의 향연으로 채운 사용자. 둘의 만남은 거주의 기능은 물론 하나의 쇼룸 역할까지 하는 ‘드림 하우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심플한 벽과 바닥재로 밑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부드러운 미감의 가구를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이보다 더 좋은 답안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집을 짓다 보면 외관에만 신경을 쓰고 속을 채우지 못하거나, 속은 알찬데 겉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전자의 경우 실속이 없고, 후자의 경우라면 문을 열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 공간이 미래 지향적이었으면 한다는 최정원 이사의 바람 이면에는 단순히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고 싶은 의미가 더 크게 담겨있다. 건축적 기능과 아티스틱한 감성, 거기에 의미와 이야기까지 담은 집. 아마도 앨리스는 종종 그 꿈을 다시 꾸고 싶지 않았을까.
설계 및 시공과 인테리어 디아키즈(02-511-8406, www.dearchiis.co.kr)

01 1층 리빙 룸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최정원 이사. 큰 볼륨감이 느껴지는 오브제와 나무 소재의 트레이가 내추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02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라인을 그대로 살린 아이 방에 한 줄기 빛이 마법처럼 걸려 있다.
03 천장과 벽면에 일부러 사이를 두어 하늘을 들인 아이의 베드 룸. 상상력을 자극하는 벽지가 진짜 하늘과 연장선상에 펼쳐진다.

Construction Plan

건축개요
위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210번길 16
대지면적 230.7m²
건축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55m²
외장재료 스투코
건축기간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 - 5개월, 시공 - 8개월

01 정형화되지 않은 프레임의 창은 그 자체로 이 주택만의 감성을 품고 있다. 계절마다 전혀 다른 풍경이 담기는 자연의 '액자'는 날마다 표정이 바뀐다.
02 골격이 드러나 마치 공중을 거니는 듯한 느낌의 계단은 분명 현대적이면서도 어딘가 예스러운 느낌도 풍긴다.
03 , 04 , 05 러프한 드로잉이 하나의 건물로 탄생하기까지 상상이 현실로 바뀌는 과정이 재미있다.


집은 꿈꿀수록 행복해집니다
- 디아키즈 명재용 대표

클라이언트와 건축가로 만났지만 집을 짓는 내내 그들은 동지였다. 모두가 만족하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최정원 이사는 원하는 것을 가감 없이 전달했고 명재용 대표는 전문가 입장에서 현실적인 솔루션을 제공했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개선의 여지와 발전할 수 있는 발상의 틈을 마련해주었다. 그렇게 1년여. 지금의 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사과를 돌려 깎듯 벽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 하나의 집을 완성하기까지 치열했던 그의 작업 노트를 훔쳐보았다.

독특한 구조가 가장 눈에 띈다.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나. 주변 상황을 고려해 주택가의 정적인 분위기와 도로변의 동적인 상황을 건물 디자인에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자 했다. 땅에 견고히 박힌 커다란 정육면체 덩어리의 형태와 도로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역동적인 벽의 형태를 각기 다른 영역에 적용했다. 자칫 서로 상반된 형태로 부조화스러울 수도 있는 부분은 한 가지 건축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통일감을 주었고, 벽이 커다란 덩어리를 감싸 안은 듯 서로 형태적으로도 조화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실내 공간은 가족 구성의 특성상 개방성이 강하게 느껴지도록 구성했고 실내의 시원한 공간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창을 통한 개방성도 충분히 고려했다.
모던 클래식 인테리어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할까? 일단 기본 베이스가 단조로워야 한다. 컬러의 통일, 장식성조차 하나의 연결감을 갖고 통일하는 게 먼저다. 그렇게 밑그림을 그린 후에야 가구 한 점, 그림 한 점이 클래식한 무드를 지녀도 서로의 느낌이 중화되며 보다 우아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소재의 믹스 매치도 좋은 방법이다.
주택을 짓든 간단한 리노베이션을 하든 주택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이가 늘고 있다. 봄이니만큼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고 싶은 이도 많을 텐데. 조언을 해준다면? 주택에서 기능적인 면은 가장 우선해야 한다. 공간이 넓어 보이는 쾌적성과 사용자의 동선을 고려한 실내 구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보다 감성적 측면을 강조하고 싶다. 뷰와 동선, 햇빛 등 자연적 요건에 우리 가족이 꿈꾸는 모습을 상상해 넣는 거다. 그건 마치 퍼즐의 마지막 조각과도 같다. 공간의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을 위한 현실적 방법을 고민하길. 좋은 집은, 공간은 그 상상 속에서 출발한다.